[설교] 우연이라는 신화에 던지는 질문 / 민건동 목사

본문: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개역개정)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신 모든 분들께 하나님의 평강이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묻고 답을 찾습니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이 세상은 어디서 왔는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런 근원적인 질문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어쩌면 너무 익숙해서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성경의 첫 문장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의 첫 페이지, 첫 문장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문장을 읽으실 때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 문장에는 논증도, 설명도, 심지어 간절한 설득조차 없지 않은가? 그저 거대한 선언처럼 다가올 뿐이다.” 현대인의 합리적 사고방식으로 볼 때, 이 문장은 꽤나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증거를 가져오라고 묻고 싶은 우리에게 성경은 그저 믿으라고 명령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이 문장을 단순한 종교적 강요로 받아들이는 것을 잠시 멈추고, 우리가 평소 삶의 기본 전제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왔던 한 가지 강력한 신념에 대한 도전적인 질문으로 함께 읽어보고자 합니다. 바로 ‘우연’이라는 신념에 대한 질문입니다.

 

우연이라는 거대한 신앙

오늘날 현대 과학은 우리 우주가 얼마나 경이롭게 정교하게 조정되어 있는지를 끊임없이 밝혀내고 있습니다.

물리학자들은 이를 ‘미세 조정’이라 부릅니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물리 상수들—중력의 세기나 우주의 팽창 속도 같은 것들이 소수점 수십 자리 아래에서 아주 미세하게만 달랐어도, 지금 우리가 아는 별들은 애초에 만들어질 수도 없었을 것이며, 생명체는 그 어떤 형태로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야말로 기적 같은 정교함입니다.

이 놀라운 우주의 정교함을 우리는 두 가지 상반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관점은 이렇습니다. 이 모든 것은 수조 개의 주사위를 던졌는데 모두 1이 나온 것과 같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경이로운 우연의 결과다. 우리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은 단순히 극한의 확률 게임에서 기적적으로 이긴 것일 뿐이다.

두 번째 관점은 이렇습니다. 그 주사위 뒤에는 분명히 어떤 의도와 설계가 존재한다. 이 모든 정교함은 우연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목적성을 띠고 있다.

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번째 관점, 즉 신적인 존재나 설계자를 믿는 것만을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여기서 잠시 냉정하게 따져볼까요?

우주의 모든 확률적 불가능성을 뚫고 그저 우연히 우리가 여기에 존재한다고 믿는 첫 번째 관점 역시, 통계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엄청난 확률적 도박에 자신을 던지는 거대한 신앙이 아닐까요?

증명되지 않은 것을 믿는다는 점에서, 첫 번째 관점 또한 하나의 믿음입니다.

어쩌면 현대 사회가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우연’이라는 신화 위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연이란 단순한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삶과 세계를 해석하는 현대인의 근본적인 틀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어떻게’의 과학과 ‘왜’의 성경

우리는 종종 과학과 성경이 서로 상충하고 대립하는 관계라고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오해는 두 분야가 다루는 질문의 층위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과학은 ‘어떻게’ 물이 끓는지를 설명합니다. 100도에서 분자들의 운동이 활발해지고 열역학 법칙에 따라 액체가 기체로 변한다는 과정을 분석하고 이해시킵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하고 유용한 지식입니다.

반면, 누군가 사랑하는 아내나 자녀가 물을 보며 “왜 물이 끓어?”라고 물었을 때, “사랑하는 당신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하고 싶어서”라고 답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것은 과학적 설명이 아닙니다. 하지만 듣는 이에게는 더 깊고 따뜻한 울림을 줍니다. 이것이 바로 ‘왜’의 영역, 즉 목적과 의미에 대한 질문의 답입니다.

창세기 1장 1절, 그리고 성경 전체는 우리에게 우주의 제조 공정이나 과학적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과학 교과서가 아닙니다.

만약 성경이 3,500년 전에 힉스 입자나 양자역학을 세밀하게 설명했다면, 당시 사람들은 아무도 그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시대마다 변화하고 발전하는 과학적 방법론이나 지식을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대를 초월하여 이 우주와 모든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가, 즉 우리의 존재론적 기초와 궁극적인 목적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답을 제공합니다.

그것이 바로 ‘태초’가 단순히 시간의 시작점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존재론적 기초가 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일 때 생기는 일들

이제 가장 중요하고 개인적인 질문을 여러분께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각자의 삶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만약 여러분이 우연의 산물이라고 믿을 때와 의도를 가지고 창조된 산물, 즉 작품이라고 믿을 때, 여러분 각자의 삶의 무게와 가치, 그리고 의미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만약 여러분이 우연의 결과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의 가치는 종종 외부적인 기준에 따라 결정되기 쉽습니다. 사회에서 증명해내는 성능이나 효율, 또는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는지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우리가 나이가 들어 쓸모가 없어지거나 실패를 경험하면, 우리의 가치 또한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의 냉혹한 시선 속에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1장 1절이 사실이라면, 즉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이 진리라면, 여러분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창조주 하나님의 의도된 존재입니다.

여러분의 가치는 여러분이 무엇을 성취했는지, 얼마나 뛰어난지에 있지 않고, 오직 여러분을 만드신 창조주의 변치 않는 의지와 사랑에 달려 있습니다.

이 얼마나 깊고 놀라운 선언입니까?

여러분은 단순히 무작위적인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태초부터 하나님의 마음속에 품었던 사랑과 의지로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작품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존재 자체가 그분의 걸작이며, 그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가집니다.

 

새로운 렌즈로의 초대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과학적, 물리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제시하고자 하는 방식도 아니며, 인간의 언어와 논리로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닙니다.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며, 저의 설교 의도 또한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께 한 가지 진지한 실험을 제안합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삶을 바라보던 기존의 렌즈를 잠시 내려놓아 보십시오.

“나는 우연히 태어난 먼지 같은 존재다”, “나는 그저 성능과 효율로 가치가 결정되는 존재다”라는 관점을 말입니다.

대신 “태초에 나를 의도하신 분이 계셨다”, “나는 사랑과 의지로 창조된 작품이다”라는 창세기 1장 1절의 렌즈를 끼고 여러분의 삶과 세상을 단 하루만이라도 다시 바라봐 보십시오.

그 새로운 렌즈를 통해 보이는 세상은 분명 다르게 다가올 것입니다. 삶이 훨씬 더 깊고 의미 있고 따뜻하며, 그동안 설명하기 힘들었던 삶의 복잡한 의미들이 비로소 해석되기 시작한다면, 그때 이 불친절해 보였던 성경의 첫 문장은 여러분에게 가장 친절하고 따뜻한 초대장이 될 것입니다.

이 초대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마을과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지역사회에 대한 우리의 역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창조 의도가 우리의 삶과 봉사 속에서 어떻게 아름답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의 삶이 하나님의 귀한 작품임을 깨닫고, 그 의미 안에서 새롭고 풍성한 오늘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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