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마을목회 신학과 실천 / 오필승 엮음>은 ‘마을목회’와 ‘마을목회신학’의 출발점이 된 뜻 깊은 책인데 시중에서 만나기 어려운 이유로 내용을 이곳에 연재합니다. 혹시 내용 중에 교정할 부분이나 공개 공유가 되지 않기를 바라시면 발행인(오필승 목사)께 연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마을만들기운동과 네트워크
/ 민건동 목사 (예장마을만들기네트워크 공동대표, 한국마을목회종합지원센터 센터장)
“마을만들기운동”에 대한 정의는 “지역공간을 주민들이 스스로 디자인해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어 마을만들기운동은 정치, 문화, 예술, 건축, 농업, 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목적, 내용, 방법 또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에 따라 우리나라의 마을만들기운동은 마을 디자인, 마을 가꾸기, 마을 만들기, 마을진흥사업, 생태마을운동, 공동체 운동, 주민자치운동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마을만들기운동은 “지역 공간을 중심으로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공동체성을 바탕으로 스스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다양한 활동”으로 정의 내릴 수 있다.
마을만들기운동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첫 번째 마을이라는 공간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익하기 때문이다. 우선 마을이라는 공간은 물리적으로 한정된 작은 공간이고 계획가의 입장에서 보면 읽어내기 좋은, 다시 말하면 계획이나 설계하기 용이한 공간이다. 비교적 동질적인 공간요소가 집합되어 있으며 주요한 동선을 중심으로 이러한 동질적인 요소들이 약간의 다양성을 주면서 배치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두 번째는 심리적으로 본다면 주민참여를 이끌어내기 좋은 공간이다. 마을은 길든 짧든 같은 역사적 경험을 주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공간이며 친밀하게 서로 간의 관계를 맺게 된다. 또한 마을주민 한 사람의 활동이 빠르게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고 영향을 미치며 파급되는 공간이고 이를 예측하거나 파악하기 좋기 때문에 주민들이 의사결정이 용이한 측면을 가진다.
세 번째로 전략적인 측면을 본다면 우리나라의 정서상 “마을”에 대한 특별한 애착, 향수 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을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실제로 “마을을 위해서라면”, “마을이 잘 된다면”하는 말은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이익을 배제해도 좋은 면죄부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을에 대한 특별한 감정은 마을만들기운동을 외부로 홍보하는 좋은 방편이 되기도 한다.
마을만들기운동은 이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주민참여형 지역개발 전략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정치적으로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의 과제가 설정되면서 민간차원의 마을만들기운동을 정부의 정책적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참여는 마을만들기운동을 확대, 보급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마을만들기의 본질을 외면한 채, 무늬만 마을만들기운동을 만들 우려가 있어 보인다. 지금 마을만들기운동은 그동안 다양한 분야에서의 다양한 활동내용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를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운동으로서 자리매김해야 하는 시점이다.
우리나라의 마을만들기 운동은 오래 전부터 마을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활동이 있어 왔고 특별히 유사한 가치관이나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한 마을에 들어가서 살거나 새로운 마을을 만들려는 노력도 있어 왔다. 마을만들기운동은 우리나라에 있어 지방자치의 시작과 맞물리고 공간을 새로운 문화 창조의 대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와 맞물리면서 다양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농촌은 “마을만들기”보다는 “마을가꾸기”라는 단어를 선호하였다. 농촌마을의 경우 새로운 마을을 만드는 것 보다는 기존의 마을을 좀 더 마을답게 가꾸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활동을 “마을만들기”로 규정하는 것이 오히려 맞는 것 같다. 왜냐하면 마을이 점차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마을이 해체되고 있다.
우선 마을이라는 지역적이면서도 특이한 공간 개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도시에서의 마을이라도 일정정도의 역사성을 공유하고 계승하는 공간이었고 기본적인 생활편의나 복지, 문화 서비스가 일어나는 생활공간이었다. 하지만 역사성이나 지역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건설과 생활 및 교육 여건, 부동산 가격의 차이에 따라 잦은 이사를 하는 생활패턴의 변화, 대규모 유통센터를 중심으로 하는 소비행태의 변화는 도시에서 마을이라는 공간적 개념을 주민들이 스스로 인지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농촌에서도 양태는 다르지만 유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마을이라는 공간은 생산과 함께 생산물의 분배와 소비가 결합된 공간이었지만 이제 생산만 이루어질 뿐 생산의 분배와 소비는 일어나지 않는 공간이 되어 버렸으며 이제 그 생산마저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마을의 경계를 넘어서 다양한 생산조직을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예전의 농촌마을은 마을 안에서 오롯이 교육과 문화 활동이 함께 벌어지는 공간이었지만 이제 교육은 광역화되었고 문화 활동은 거의 피폐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농촌에서의 소비행태 또한 도시를 닮아가면서 인근 도시의 대형유통매장 중심으로 개편되고 있다. 따라서 도시나 농촌 모두 마을주민들이 공유하고 있던 마을이라는 공간을 구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상황적 여건들이 엷어지면서 마을 공간 개념이 해체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개념의 해체는 물리적 측면에서 마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뿐 아니라 마을에서 벌어지던 다양하고 중요한 인간적인 고리들도 해체하고 있다. 예전의 도시 마을의 시장 골목에서 좌판을 벌이고 잡다한 야채를 파는 할머니는 젊은 새댁에게는 새로운 반찬거리와 요리법을 알려주는 요리선생이었고 철물점의 주인은 철물과 전기기구를 파는 상인이기도 했지만 집수리와 전기공사의 마을 컨설턴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많은 도시인들은 바코드를 매개로 연결되는 대형유통매장에서 의미 없는 인사를 던지는 캐셔를 중심으로 문화가 상실된, 인간미가 상실된 소비생활을 오히려 문명적인 것이고 진보적인 것으로 받아드리고 있다. 농촌에서도 생산의 동반자이며 식량을 함께 나누던 마을주민들은 이제 자신의 농산물을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하는 경쟁자가 되었거나 그런 경쟁도 할 수 없는, 그저 자신의 농업노동으로 자신의 삶을 간신히 연명하는 노인만이 이웃이 되어 인간적인 교류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즉 심리적, 정서적 마을의 개념도 함께 해체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물리적, 정서적 마을 개념의 해체가 경제적인 영향을 지대하게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도시 마을이던 농촌마을이던 그 정도는 달랐지만 마을을 중심으로 내부순환적인 경제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었다. 즉 마을에서의 한 개인의 소득은 일정부분 마을주민들의 소득으로 돌아갔고 그렇게 얻어진 소득은 다시 마을 주민들의 소득으로 분배되는 재분배효과내지는 순환효과가 있었지만 지금은 창출된 부가 끊임없이 외부로 유출되는 경제구조로 변하고 있다. 소비경향이 달라졌기 때문에 일정한 마을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던 소규모 상업은 이제 다른 마을, 더 나아가 다른 지역과 경쟁해야 하고 심지어 거대자본이 경영하는 대형유통매장과 경쟁해야 한다.
실제로 중소도시의 상점들은 끊임없이 업종을 바꾸고 있고 작은 점포로 분화되는 과정을 겪고 있으며 농촌의 소도읍의 소규모 상업은 거의 침체하고 있다. 결국 어느 누구든 거대자본과 경쟁해야 하지만 거대자본이 마련한 소비시장에서 소비할 수밖에 없는 이중적인 착취구조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는 결국 다시 마을을 해체하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그리고 거대자본의 커다랗고 두려운 힘은 “세계화”로 미화되고 있다.
마을만들기의 대상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우리가 마을을 만들려고 하는 대상은 아마도 마을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은 아닐 것이다. 물리적 공간 디자인 운동에서 벗어나 정치적으로는 자치운동이며 문화적으로는 지역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운동이며 경제적으로 순환과 나눔의 공생운동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마을만들기운동은 세계화를 방어할 수 있는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한 시대를 정리하고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 즉 마을만들기운동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야 하는 내부적인 측면과 앞 서 언급했듯이 지역개발, 지방분권, 균형발전 등 정치, 사회적인 배경과 함께 세계화라는 새로운 외부적인 경제 질서의 개편 등이 맞물려있다.
마을은 전통적으로 안정성을 지향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변화에 대해 보수적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개인의 자유는 억압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매우 느리다. 현재의 질서가 명확하게 존재하고, 미래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있을 때 마을이 공동체로서 기능하게 된다. 내부 문제는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해결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셈이다.
일제 강점기와 분단, 독재의 20세기를 겪으며 원형적인 마을 구조는 크게 변하였다. 전통적인 질서는 붕괴하였고, 변화하는 시대의 새로운 질서는 창조되지 못하였다.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으로 생각 있는 지식인은 지역을 떠나거나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 유례가 없는 급속한 도시화로 농촌이든 도시든 안정된 지역사회로서의 정체성은 상실하였다. 농촌은 초 고령화로 신음하고, 도시는 비인간성으로 아우성친다. 지방자치의 역사는 불과 20여년에 불과하고, 풀뿌리 농촌 사회는 ‘피 흘린 사람들’의 노력에 기대어 무임승차한 성격도 강하다.
마을 ‘만들기’는 이러한 시대적 현실에서 탄생한 풀뿌리 주민자치운동이다. 주민이 지역사회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사회운동의 다른 표현이다. 1992년의 지방자치제 실시와 브라질 리우회의에서 제기한 지속가능한 발전, 소비에트 사회주의연방의 붕괴 등이 크게 기여한 방향 전환이었다. 주민들 스스로 삶터로서의 생활세계를 복원하고 주민 참여의 지역공동체를 만들자는 지방자치운동이기도 하였다. 남북통일을 대비한 튼튼한 진지로서 마을공동체를 복원하자는 근본주의 운동이었다.
“전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자”. 이 슬로건은 1992년 브라질 리우회의의 문제의식이었고, 마을만들기의 운동 방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 마을만들기는 마을에 살면서 실천하는 생활운동이지만 세상 흐름을 놓치지 않고 보편타당한 길을 찾아가야함을 요구받는다.
그럼에도 마을만들기는 실천 활동이고 공동행동을 중시한다. 학습과 토론, 합의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꿈꾼다. 행정(공무원)이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진정한 지방자치정부를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마을만들기는 네트워크로 존재할 수밖에 없고, 다양한 열린 관계망 속에서만 그 목표를 실현할 수 있다. 이제는 마을 단위의 좁은 세계에서 실현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복잡한 현대 사회는 여전히 강력한 국가 중심 체계로 작동하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도 마을은 ‘주민자치의 공간’이자 ‘저항의 기지’이고 ‘대안사회의 실험장’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자본과 국가에 대항하기 위한 ‘의식적 실천’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생활공간을 꿈꾼다. 마을만들기 활동은 이를 끊임없이 서로 자극하고 격려하기 위한 문화적 장치이고, 풀뿌리 마을의 네트워크가 공간적으로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고 협력관계가 잘 작동될 때 비로소 마을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특히, 생활권으로서의 읍면동 단위와 기초 정치 단위로서의 시군구 단위에서의 협력 네트워크가 현실적으로 중요하다. 어디까지나 마을공동체의 복원도 이런 지역 네트워크의 총체적 노력을 통해 가능하다. 마을 활동에 집중하면서도 외부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교육과 문화, 복지, 환경 등의 생활정치 영역으로 확산되지 않으면 꿈을 이룰 수 없다. “작은 힘이 모여 큰 산을 옮긴다(愚公移山)”는 말의 은유는 이런 뜻이다.
전통적으로 안정된 마을 공동체일수록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내부구조가 발달하고 외부 변화에 대해 보수적 선택이 많아진다. 지역, 학연, 혈연으로 얽힌 관계망이 새로운 활동과 사람을 수용하기 힘들게 한다. 외부와의 소통은 약해지고 내부의 억압적 착취구조가 강해지면 내부로부터 저항의 힘이 다시 작동하게 된다. ‘텃세’가 내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문화적 장치로서 순기능으로 작동할 수도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경우 변화에 대한 저항 장치로서 역기능이 더 많다.
그래서 현대의 마을 공동체는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한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 더욱 개방된 공간으로서의 ‘열린 마을’이 필요하다. 특히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지 않고 상부상조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런 약속들이 마을 규약이나 자치단체 조례에 반영될 필요도 있다. 바뀐 시대에 맞추어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마을의 안정성과 동질성을 찾아가면서도 차이를 존중하고 외부의 변화에 익숙해야 한다.
바뀌지 않으며 오래된 시스템은 흔히 개인을 억압하기 쉽다. 마을 단위의 좁은 공간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안정성을 제도화하는 시스템 장치로서 불문율이나 규약, 조례 등이 필요하지만 “과(過)하면 독(毒)”이 된다. ‘자유로운 개인의 유연한 네트워크’, 이것이 마을만들기의 조직논리이다.
네트워크는 개인 대 개인, 조직 대 조직이 결합하여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이다. 때문에 각자의 처한 사정이 달라 관점이나 해결방식이 매우 상이할 수 있다. 개인의 방법론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많아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기도 한다. 농촌 마을 주민들은 “뭉치면 망한다”는 식의 말을 쉽게 내뱉는다. 그만큼 네트워크 활동이 실제로 쉽지 않다는 것을 웅변한다.
결국 마을만들기가 그러하듯 네트워크 또한 지속적인 훈련과정일 수밖에 없다. 대화와 협력의 문화적 전통이 약한 한국 사회구조 안에서 개인적 성찰과 조직문화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마을만들기 활동 속에서, 또 네트워크 활동 속에서 치열하게 스스로를 단련시켜야 한다.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지 못하고, 이미지 비판이나 말꼬리 달기와 같은 대화법은 네트워크 자체를 부정하게 할 뿐이다.
또 네트워크는 참가하는 개인이나 조직의 성실성과 책임성이 기반이 된다. 일정한 규율이 있어야 하고 그것은 ‘필요에 대한 공감’정도에 달려 있다. 제도화 이전에 신뢰관계를 형상하기 위한 상당한 토론과 높은 합의 수준을 요구한다. 참가 자체가 쉽지 않은 형태의 회의 구조, 지나친 부담을 느끼게 하는 경영 압박은 개인의 성실성만으로 극복하기 어렵다. ‘공동의 필요’가 명확할수록 네트워크 구성원은 신바람이 난다.
다양한 차원의 네트워크 활동으로 얻어낸 성과를 어디에 어떻게 축적할 것인가? 그 성과를 누구와 어떻게 공유하고 전파할 것인가? 지난 20여 년간 전국적으로 많은 활동이 있었지만 그 성과가 지역에 축적되지 못하고 쉽게 흩어진 사례가 많다. 기록조차 남아 있지 못해 그 다음 세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역사적 경험에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다양한 활동의 거점공간을 확보하여 공동의 지식을 확대하고, 시행착오의 경험까지 포함하여 축적된 성과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마을 주민들이 쉽게 모이는 사랑방이나 북 카페와 같은 소규모 공간을 만드는 것이 매우 유효할 수 있다. 수익성까지 갖춘 경제활동 기반을 병행한다면 훨씬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유럽의 민중의집 사례처럼 여러 조직이 협력하여 생협 매장과 식당, 단체 사무실, 회의실, 강당 등이 겸비된 복합건물을 확보할 수 있다면 훨씬 강력한 거점공간이 될 수 있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활동가와 조직은 각자 활동을 강화하면서도 이러한 상호협력을 통해 중심공간을 공동으로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때로는 행정사업의 지원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도 있고, 주민들의 회비나 출자금 등의 출연을 통해 협동조합 방식으로 조직할 수도 있다. 현실 역량을 고려하여 접근하되 네트워크 활동의 성과를 담아낼 수 있는 물리적 공간 확보의 중요성에 크게 주목하여 접근해야 한다.
마을만들기는 지역사회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주체들의 네트워크에서 출발한다. 당사자 의식을 가진 마을 주민이 자발적인 연대조직을 구성하는 것이 가장 소중하고 시급하다. 주민 스스로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한 공동의 과제를 발굴하고 연대활동으로 공동대응 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지역 활동가나 행정 공무원은 어디까지나 이런 주민 활동의 응원군이다.
마을 주민(대표)의 자발적 네트워크 조직은 시군구 단위를 기본으로 한다. 행정이 주도하는 사업별 조직화는 운동성이 낮을 수밖에 없고 칸막이를 쉽게 극복할 수 없으며, 관료화되어 쉽게 해체되지도 않는다. 마을 단위 활동의 대표들이 당사자로서 주인공이 된 튼튼한 조직을 설립해야 한다. 농촌에서는 각종 마을(행정리, 권역) 위원장이, 도시에서는 풀뿌리 활동의 대표들이 주체가 될 것이다. 조직 형태는 활동이 활발한 마을의 대표가 모두 참가하는 형태가 출발단계에서는 비교적 쉽다. 점차적으로 로컬푸드 유통이나 도농교류 체험, 마을박물관 등과 같이 관심 분야별 전문조직 형태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물론 마을만들기의 역사가 짧고 실천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공공성을 가지고 생활(경제)기반도 명확하게 확보된 리더는 많지 않다. 의식수준의 편차도 매우 크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가장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네트워크 조직임에는 분명하다. 어디까지나 마을만들기의 핵심 주체이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마을 대표가 마을만들기 활동의 주체로서 돋보이지 않고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만 강화되는 것은 본질을 왜곡하기 쉽다.
마을과 인근 마을 사이의 네트워크를 염두에 둔 대표적인 행정 사업이 농림수산식품부의 권역단위종합정비사업(예전의 마을종합개발사업)이다. 하지만 농촌 마을의 역량이 매우 부족한 현실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추진하여 대개는 실패하였다고 평가된다. 마을 스스로 추진하기에 지나치게 규모가 큰 사업이었고, 인근 마을과의 근원적 관계를 무시하고 밀어붙인 정책적 실패가 큰 원인이다.
공간 단위로 볼 때 무엇보다 읍면동 단위로 주민 생활공간의 중심지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네트워크가 조직되어야 한다. 경제(재래시장)와 행정(읍면동사무소), 교육(초중학교), 치안(경찰), 복지 등 생활권의 중심성이 강화될 때 마을 단위 활동은 지속될 수 있다. 교통이 발달하고 주민들의 생활범위가 확장된 현대 사회에서 마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많아졌고, 그래서 가까운 읍면동 단위에서 생활의 필요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마을만들기 공간 네트워크를 읍면동 단위에서 조직하는 방향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농촌에서는 읍면 소재지의 중심기능을 강화하여 이동의 필요성을 줄여주고, 도시에서는 경제적 기능을 강화하여 원거리 출퇴근하는 직주분리(職住分離)가 해소되도록 해야 한다. 시군구 단위에서 이런 활동의 맹아가 많은 지역을 선택하여 의식적으로 성공사례를 창출하면 인근으로 빨리 확산될 수 있다.
또 이를 위한 주체로서 주민자치위원회의 중요성에 주목해야 한다. 주민자치위원회야말로 애당초 읍면동 단위의 마을만들기 네트워크 기능을 담당하도록 민주화운동의 성과물로 설치된 것이다. 보수적인 운영, 권한의 한계, 지나친 행정 관여 등 여러 문제가 있지만 별도로 마을만들기 읍면동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도 어렵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2013년부터 시범 실시되고, 2017년부터 전면 실시를 예정하고 있는 주민자치회 제도를 지렛대로 삼아 의식적인 실천을 해야 한다. 풀뿌리 지역 단위 활동의 기반이 강화되고 안정되면 이와 같은 네트워크의 필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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