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본인은 좀 의아스러워 하시는 걸, 일단 잘 보이는 데 걸어 달라고 오필승 목사(마을목회신문 대표, 신동리교회)께 간판을 만들어 맡겨 드렸다. 간판에 새길 문구를 어떻게 할지 여러 날 고민했다. 우리의 ‘농촌교회를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공통의 문제를 안고 벌써 십수 년 째 오필승 목사 곁에서 지금까지 함께 했던 많은 일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간판에 새겼다. [마을목회연구소 – ‘마을목회’ 용어 발상지]

“‘마을목회’ 용어 발상지라니?!” “그게 그럴 정도로 중요한가?” “‘마을목회’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어떤 이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용어를 처음 주창한 이가 누구냐?는 걸 주장하자는 게 아니다. 그보다 그런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면서 목회적 정체성을 찾아내야 했던 그 현장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한 평범한 농촌교회 목사가 남들 다 겪는 농촌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대해 어떤 남다른 대처를 하게 되었던 것인지, ‘마을목회’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어떤 목회적 선교적 과제를 극복하려고 했던 것인지, 그 명확한 의미를 송곳으로 찌르듯 물어 그 진짜 의미를 알아야겠다는 것이다.
‘마을’과 ‘목회’라는 매우 생경한 두 낱말을 함께 붙여 사용하게 된 그 현장,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 현장의 목회적 신학적 고민들과 함께 일단 진력하여 실천하면서 길을 찾아가야 했던 절실함이 무엇이었는지 알아야 그것을 우리 각자의 목회 현장에 구현해 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그저 시류에 따르는 또 하나의 무슨 목회 성공 비결로 여기거나 또는 남이 아직 잘 모르는 ‘마을목회’라는 말을 먼저 가져다 흉내 내는 것에 그치는 등의 우를 범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아직도 “마을목회가 뭐냐?” “마을목회하면 교회 부흥되냐?”는 식의 길 잃은 엉뚱한 질문들이 여전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오필승 목사가 당시 ‘마을목회 이야기 한마당 첫 모임’을 초기 기획하면서, “아예 ‘마을목회’라고 해야겠다.”고 하시는 말을 곁에서 들으며 내심 몹시 고무되었던 나는 ‘마을목회 현장’들을 취재하여 알려야겠다는 마음이 일었고, 당시 <예장뉴스>에 이런 제목의 연재 기사를 호기롭게 시작했었다. “마을목회 따라잡기” (참고로, 여기 두 편의 기사가 있다 – https://ckaskan1.tistory.com/6196 | https://ckaskan1.tistory.com/6515)
‘마을목회 현장 따라잡기’라니? 그것은 특히 마을목회가 무엇보다도 현장 목회이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 한국교회가 양적 팽창이라는 신화를 한껏 쓰고 있을 때 얼마나 많은 목회자가 그처럼 교회를 급성장시켜 남부러운 성공을 하는 것인지 그 비결을 배우겠다고 수십 수백만 원도 아까워하지 않고 몰려 다녔던가? 처음에는 그런 현상을 보고 참 기괴한 일이라고 했었는데 한편 생각해 보니 이해가 되는 면이 없지 않은 것이다. 그만큼 목회현장이라는 건 각양각색으로 다양하게 살아 움직이는 현장이고, 청자나 백자를 굽는 것처럼 그저 이론으로 또는 어깨 넘어로 보는 것으로는 결단코 이루어낼 수 없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더구나 ‘마을목회’는 가장 현장에서 진행되는 목회가 아니던가. 교회 밖 세상 속에 가장 깊이 스며들어 우리 본연의 정체성을 고민할 정도로 복음 선교의 첨두에 있는 목회가 아니던가. 그런데 이걸 다른 이들이 보도한 기록물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야기한다고? ‘현장 없는 신학’이 이렇게 한국교회를 망쳐 놓았고, ‘현장을 경시하는 한심한 풍토’가 한국교회 신학을 이 지경으로 만든 주범이 아니던가. ‘마을+목회’ 용어 발상지! 그렇다. 그 낯선 두 낱말을 너무도 당연하게 함께 사용할 수 있었던 앞선 선교적 관점과 그런 독특한 목회적 개념이 발생된 입체적 상황들을 상세히 읽어내야 마을목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교회 주변의 마을을 주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현장이라고 속절없이 그 전체를 품게 되었던 그 심경이 무엇이었는지? 그런 목회적 안타까움이 발동한 신학적 자리는 무엇이었는지? 거기에서 어떤 좌절과 함께 하느님 나라의 희망을 보았던 것인지? 남 모르는 고민으로 밤을 지새던 그때 과연 어떤 성서 구절에 꽂혀 부여잡고 있었던 것인지?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어떻게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있었던 것인지? 남이 쉬이 듣지 못하는 마을의 신음과 탄식을 어떻게 들을 수 있었던 것인지? 목회자인 자신이 마을 공동체의 ‘솔루셔니스트’로 나서야겠다는 남다른 소명이 생긴 바탕에는 어떤 신앙 고백이 있었던 것인지? 그래서 거의 아무도 하지 않는 일들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었던 것인지? 그런 마음을 주신 주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어떤 실마리를 주시는 것인지…
(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마을목회’ 만큼은 또 한 번 유행하고 지나가는 흔한 교회 성장론 내지 목회 성공비결 중 하나일 수 없다고 여기기에 더욱 궁금한 부분들이다. 기독교 위기의 시대 끝에 서있는 우리에게서 이를 불러 일으키신 주님의 눈이 향하시는 곳을 바라보고 그 의중을 파악하고 기꺼이 응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마을목회’는 각자 다 다른 현장이면서도 공통의 분모들을 찾아 공유해야 하는 우리가 자신의 목회 현장에서 실천을 미루고 마을목회라는 이론을 먼저 학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당장에 길이 없는 곳에서 일단 온 몸으로 실천하면서 살아 움직이는 현장의 상황에 따라 즉각 즉각 변주해 내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그 ‘맨 처음의 자리’를 궁금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청자 백자 빛 선명한 도자를 구워내기 위해 그 뜨거운 가마의 자리를 잡는 것부터, 만들어 세우고, 고령토를 밟아 이기고, 조성하고, 가마에 들여 앉히고, 장작을 마련하고, 불을 지피고, 불길의 색을 분별하며 조절하는 그 모든 일을 단 하나도 놓치는 것이 없이 살피며 따라 잡아야 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찌 이 하느님 나라의 일을 남의 말만 몇 번 듣고 흉내 내 보다 안 된다고 그만 두겠는가.
고군분투하던 교회를 조기 은퇴하고 내 나름의 하느님 나라 운동을 지속하려고 벅찬 생계 노동 중이기에 여전히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이제 심적인 여유나마 아주 조금은 생긴 것 같아 ‘마을목회 따라잡기’를 다시 시도해 본다. 내 나름 마을목회 현장에서 온갖 복병들에 막혀 더 이상 길을 찾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할 때, 나는 오필승 이원돈 두 분의 마을목회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반복해 들었고 그리고 그때마다 결정적인 돌파구가 되는 힌트 내지 영감을 얻곤 했었다. 그러므로 이 연재 글들의 제목은 당연하지만 ‘마을목회 따라잡기, 이 진 목사의 관점에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숙제들을 안고 [‘마을목회’ 용어 발상지]라는 간판을 새겨다가 목사님께 걸어 달라고 부탁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비록 농촌교회를 조기 은퇴하고 목회현장을 떠나 있지만 마을목회운동 현장은 결코 떠날 수 없는 소명으로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목회운동이야말로 최상의 교회갱신운동이며, 최선의 선교적교회운동이며, 최고의 하느님나라운동이요 갈릴리 예수님 운동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