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동네 빗자루 성인

충주 앙성면에 양지말산이 있다. 왕복 한 시간 남짓이면 다녀올 수 있는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 서면 남한강이 시원하게 펼쳐져 몸과 마음을 함께 쉬게 해 주는 곳이다. 얼마 전, 가까운 목사님과 함께 그 산을 올랐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산행은 아니었다. 그저 일상의 리듬을 회복하기 위한 걸음이었다.

양지말산 정상에서 보이는 남한강

겨울 산길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보통 이 시기의 산은 눈비라도 내리면 쉽게 미끄러워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길이 비교적 말끔했다. 낙엽은 한쪽으로 정리되어 있었고, 발길이 잦은 곳에는 흙계단까지 놓여 있었다. 자연 그대로인 듯 보였지만, 그 ‘안전한 산길’ 에는 누군가의 꾸준한 손길이 숨어 있었다.

산행안전을 위해 깨끗하게 정리된 산길

“이 길은 동네 장로님이 관리하세요.”

함께 걷던 목사님의 말이었다. 산 아래에서 작은 시골교회를 섬기는 장로님이 틈나는 대로 산에 올라와 빗자루로 낙엽을 쓸고,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길을 손본다는 이야기였다. 행정의 요구도 아니었고, 교회의 공식 사역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산길을 자주 다니다 보니, 그 길을 걷는 다른 이들의 발걸음이 마음에 걸렸을 뿐이라고 했다.

산길을 쓸기 위해 둔 빗자루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오래전에 읽었던 ‘빗자루 성인’이 떠올랐다. 가톨릭 성인 마르틴 데 포레스는 수도원에서 평생 허드렛일을 맡아 바닥을 쓸고 병자를 돌보던 평수도사였다. 그는 설교하지 않았고,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낮은 일을 가장 성실하게 감당한 그의 삶은 결국 교회가 기억하는 성인의 자리까지 이르게 했다. 그의 빗자루질은 단순 노동이 아니라, 이웃을 향한 기도였다.

양지말산의 장로님과 빗자루 성인은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신앙 전통에 속해 있지만,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을 지닌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맡은 자리, 자신이 익숙하고 좋아하는 공간에서 이웃을 향한 사랑을 구체화했다는 점이다. 이웃사랑은 반드시 나를 소진시키는 희생의 형식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기쁨을 느끼는 일을 정성껏 수행할 때, 그 기쁨이 타인의 안전과 편안함으로 확장되는 순간, 사랑은 가장 지속 가능한 형태를 띤다.

가톨릭 성인 마르틴 데 포레스를 묘사한 스테인글라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이 추상적 윤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자신이 즐겨 찾는 산길을 정성껏 쓸며 타인의 안전을 준비하는 행위로 증명하고 있었다. 이웃사랑은 멀리 있는 위대한 헌신이 아니라, 내가 자주 걷는 길을 조금 더 안전하게 만드는 일에서 시작될 수 있다. 사랑은 고통의 크기로만 측정되지 않는다

.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행위가 타인의 삶을 더 존엄하게 만드는가 하는 질문이다.

그날 산을 내려오며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설교보다 먼저 복음이 몸으로 해석되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강단 위에서만 선포되지 않는다. 빗자루를 들고 산길을 오르는 한 장로의 조용한 발걸음 위에서,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통해 이웃의 삶을 살리는 일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는 오늘도 소리 없이 자라고 있었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만든 흙계단

 

 

이 원영

총회농촌선교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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